“환자 안전의 시대, 마취는 당신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환자 안전의 시대, 마취는 당신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8.03.2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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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옥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사장·고려대학교 구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점과 점 사이를 가장 짧게 연결한 선, 바로 직선에 대한 수학적 정의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수학책 밖이라는 것이 이일옥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사장의 말이다. 실제로 점과 점 사이에는 수많은 장애물과 변수가 존재한다. 세상 밖의 삶은 목적지까지의 최적의 거리가 아닌 언제나 직선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이 교수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의료 환경 속, 의료계의 여성 리더이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서 계획한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일옥 이사장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일옥 이사장

의학한림원 정회원 선정, 새로운 ‘연구철학’ 정립할 때

기초 및 임상분야를 포함한 의학 분야에서 현저한 업적이 있는 의학자들을 회원으로 한국의학 및 국민 건강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창립된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전문 분야 연구 경력 20년 이상에 논문 점수를 포함한 실적 등 심사항목 총점이 250점 이상 되어야 하는 까다로운 자리에 이일옥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18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정되면서 국내 마취통증의학과의 발전과 국가 정책의 반영이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

“과거에는 개인의 업적에 초점을 맞췄지만, 정회원이 되고나니 논문을 위한 논문이나 실험을 위한 실험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들과 결별하고, ‘연구철학’의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의학한림원 정회원이 주는 무게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보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 및 마취통증의학과의 발전과 함께 의료의 국민 안전과 보건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93년 의과대학 전임강사로 임용된 이 교수는 1996년 하버드 의과대학(Harvard Medical School)과 2006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연수를 마쳤다. 분자생물학이 인기를 끌던 당시, 통증발현물질인 c-Fos를 접한 그는 연수를 다녀올 때마다 실험실과의 협업으로 SCI 저널에 의미 있는 논문을 등재해 왔다. 이후에는 행동연구 약학 실험실에서 쥐 실험을 통해 우리나라의 실정에 접목시킨 연구를 지속하면서 학문의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주력했다. 시간이 흘러 UBC에서는 쥐의 척수강 내로 카테타를 거치하고 약물을 투여하는 연구를 이 교수와 함께 하길 원했지만, 그는 국내 연구 수준의 향상을 위해 고국 행을 택했다.

현재 이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실험실을 꾸리면서 뇌신경 인지기능에 대한 연구 및 관련 학자들을 배출할 예정이다. 그는 인구통계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알려진 장 마리 로빈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교수가 지난 2017년 코엑스에서 열린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17’에 참석해 “말로만 백세 시대가 아니라 곧 기대수명 110세 시대가 될 것이고 본인은 142세까지 기대한다”라고 밝힌 것을 언급하면서 2015년부터 일어나고 있는 ‘장수혁명’에 대비한 연구를 준비 중이다. 대한노인마취통증학회의 창립총회를 주도하고 회장을 역임한 저력이 있는 그는 과학기술로 늘어난 수명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 뇌 인지기능의 측면에서 기존의 약들 가운데 뇌 보호 효과를 기대할 만한 약품을 찾는 작업에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전공의 수련 질 관리·학회의 위상 제고에 총력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마취과 의사들은 거의 대부분 수술실에서 행해지는 외과 수술환자의 마취에만 전념해왔다. 하지만, 현재 마취통증학과 의사들은 수술 전·중·후 환자를 관리하고, 중환자 관리의 전문가이자 심폐소생술 전문가, 통증관리의 전문가로서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과 만족도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수술 후 통증 관리 뿐 아니라 만성통증에 대한 다양한 시술이 환자에게 적용되면서 마취과의 영역은 수술실 밖으로 확장되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마취과학에서 마취통증의학으로 진료과목 명칭을 변경한 뒤, 다수의 통증클리닉이 개설되는 등 마취통증의학과는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비급여 감액, 선택진료비 폐지, 포괄수가제 확대 등 급여제도는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마취통증의학과의 수가는 낮아지는 반면에, 환자의 권리와 안전에 대한 요구는 더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2016년 제 20대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사장으로의 임기를 시작한 이일옥 교수. 그는 임기를 시작하면서 ‘의료의 질’을 화두로 꺼냈으며, 안전한 진료를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진료 수준을 확보해야 하고 능력과 자격을 갖춘 전문의가 합당한 대우를 받는 선순환 구조를 정립하는데 열심이다.

이 교수는 이사장 공약 사항이었던 환자 안전을 책임질 우수한 전문의 양성을 위한 필수 시뮬레이션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마치고 2017년부터 전공의 교육에 접목시키고 있다. 전공의라면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하는 마취, 통증, 중환자의학에 관한 4~5가지 시뮬레이션 교육을 이수하도록 해 학회 차원에서 일종의 ‘질 관리(Quality Control)’를 한다는 복안이다. 그는 각 의과대학의 주임교수들이 양질의 교육‧수련을 하고 있지만 병원마다 특화된 수술이 상이하고, 외과의의 실력에 따라 수술 결과도 달라지기에 환자 안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뮬레이션 상황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시뮬레이션은 전공의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며, 다만 현직에 종사하는 강사들의 특성 상 외부 교육‧수련이 어려운 까닭에 학회에서만 선보이고 있다. 그는 시뮬레이션 교육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사장이 되면서 2017년 제94차 종합학술대회 ‘KOREA ANESTHESIA 2017’을 개최했다. 이는 대한마취통증의학회 62년의 역사 중 두 번째로 개최된 국제 학술대회이며 세계 10여 개국의 1,700여명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해 성공적인 행사로 치러졌다. 그는 ‘2022 아시아-오세아니아 마취통증의학과 학술대회(AACA)’의 원활한 대회개최를 위해 2018년에도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해 기초를 닦고자 한다. 이것이 곧 학문의 후속세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정년이 가까운 원로 교수들에게도 현역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다수의 자리를 마련해 학문을 꽃피우고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예정이다.

 

마취사고 등 현안 부상… ‘마취실명제-초빙료-마취료가산’ 절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에 따르면, 매년 약 200만 건의 마취가 시행되고 있지만, 일반 의원급 의료기관(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제외)의 절반 이상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초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그는 비전문의 마취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마취행위 시 인센티브 형태의 수가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재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마취를 하나 비전문의가 마취를 하나 청구하는 마취료는 같다. 이는 결국 전문의를 쓸 필요가 없게 되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하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 병·의원의 경우에는 초빙하지 않고 마취행위를 실시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덧붙여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마취행위를 했을 때, 초빙료와 함께 가산료를 책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마취는 시작과 끝, 수술 중간의 모니터링이 중요한데 마취료는 청구하고 초빙료를 청구하지 않는 의료기관은 결국 이러한 모니터링이 소홀하게 됨을 피하지 못한 채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수술과 전신마취 등을 받는 환자에게 설명의무를 강화하는 일명 ‘설명의무법’이 시행됐지만, 의료 현장의 마취동의서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설명의무법은 환자가 수술이나 전신마취를 받을 경우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지난 2017년 6월부터 시행 중이다. 특히, 전신마취 수술의 경우 마취를 시행하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마취에 대한 설명의무를 담당하게 된다. 그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 의료기관의 마취동의서에서도 마취과 전문의의 설명의무가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서는 ‘표준동의서’가 개선되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한 마취실명제에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이에 그가 이끄는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전국 지회와 시민단체 및 지역 언론들과 공동으로 “마취, 바로 당신의 생명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마취환자 안전에 대하여 안전한 국민의료 정착을 위한 공동 패널 토의를 개최하며 관심을 모은바 있다. 이 교수는 상당수의 마취과 의사가 배출되고 있지만, 병원·의원에서 마취가 필요한 의료 행위에 마취과 의사가 관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취실명제가 강화되고 제대로 관리하게 된다면 의료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병원과 의사를 신뢰하는 마음 이상으로 환자 스스로도 자신을 보호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며 “내 마취는 마취과 의사가 해주시나요?”라고 물어달라고 당부했다.

“환자들이 어떤 의사가 마취를 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취실명제는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첫 걸음입니다. 의료인이라면 모든 의료행위를 다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맞지만, 그렇다면 전문의 제도는 왜 탄생했을까요?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에 가고 뼈가 부러지면 정형외과를 찾는 것처럼 마취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가 마취통증의학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서 자신이 조력한 환자가 큰 수술을 견디고 무사히 회복하는 데에서 오는 보람 때문이다. 또한 임상현장에서 나오는 의료기기에 대한 개선 아이디어나 개발하고픈 아이디어로 첨단 의료기기가 상용화되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도 마취통증의학 전문의로서의 자부심이며, 확신을 가지고 길을 걷는 그의 눈은 어김없이 빛나고 있었다.

 

“유리천장은 스스로 만드는 것, 여성들도 목표의식 가져야”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직선제 최초의 여성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일옥 교수는 의료계의 ‘유리천장’을 우려하는 기자의 질문에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다 보니 이사장이 됐다”며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학회 활동만 18년을 이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드러지게 됐다고 말하는 그는 여성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보다는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사장 후보로 대한마취통증의학회 평의원 105분을 한 분 한 분 만났지만 ‘과연 여자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보여준 평의원은 전혀 없었다”며 “유리천장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학내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주임교수나 과장을 역임하고 있는 여성 전문의가 최근 10년 동안 평균 20%, 학회이사 및 평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리더가 평균 16%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라며, 의료계의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리더십에는 극히 제한적인 여의사가 참여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이어서 국내 면허 의사 수에서 여자 의사 비율이 최근 10년 동안 평균 37%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히 숫자만 많다고 주도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는 의료계 내 여성이 더욱 큰 힘을 갖기 위해서는 의견 결정권자 중에 여의사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여의사들은 한번 활동을 시작하면 참석률도 높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모범적이며 성실하게 일하는데, 그 시발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스스로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확실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표를 정했다면 도전해서 성취해야죠. 여성 의료진이 갖고 있는 리더십을 통해 의료계의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롤 모델을 완성하고 후배 마취과의사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열어주고자 합니다.”

인터뷰 내내 당당함과 자신감을 잃지 않은 이 교수.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이다”라고 밝혀 그의 직업관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단순하고 명료한 답변이 돌아왔다. “악의(惡師)가 되지 말 것.” “좋은 의사가 될 것.” 그는 환자를 마취 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좋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되는 길이라며 후학들을 위한 조언의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자신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였다.

“사람들의 수명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많은 질환들을 갖게 됩니다. 당뇨나 고혈압은 기본이고 협심증, 뇌졸중 후유증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단순히 환자를 재웠다 깨우는 수준이 아니라 지금은 고난도 수술을 위해서 반드시 전문의가 해야 하는 마취의 시대입니다. 환자안전이 중요해지는 시대이며,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점에서 단순 지식으로는 고난도의 수술을 버틸 수 없습니다. 마취에 대한 인식제고와 함께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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